전 공동대표 전대환 목사님께서 내일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옮겨 싣습니다.

 

 4월이 너무 춥다
전대환 (대구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한울교회 목사)

여기저기 다니며 꽃 사진을 찍어 모으기 시작한 게 벌써 5년이나 됐다. 가장 심각한 현대병이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라기에, 흙을 좀 밟아보려고 틈만 나면 가까운 교외를 찾았던 것이고, 그냥 다니기 밋밋해서 집에 있는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던 것인데, 그게 어느 새 취미가 돼버렸다.

그렇게 모은 사진들이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잘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놓은 게 수천 장쯤 되니 적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자주 찾아가는 오솔길 옆에 해마다 어느 꽃이 언제쯤 피는지 날짜까지 거의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봄꽃 피는 날짜가 다른 해보다 늦다. 보도를 보니 이상저온 현상이 있어서 그렇단다. 지난 겨울에 눈이 그렇게 많이 오더니 봄에도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한 가까운 지인이 어느 글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읽었다.
“우리 사는 이 땅에서 뭐가 그렇게 슬픈 일이 많기에 하늘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가.”

이상저온에 침몰, 추락, 지진
과거 문민정부 시절에 온갖 사고가 연이어 터지던 일까지 악몽이 되어 스멀스멀 자꾸 떠오르는 것도 불길하다. 천안함이 침몰한 뒤 벌써 보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생존자 소식은 없고, 사건의 원인조자 밝혀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으니 참 우울한 4월이다.

생때같은 장병들이 변을 당한 것도 안타까운데, 구조 활동을 벌이다가 아까운 목숨이 스러졌고, 수색작업을 돕던 민간인 어부들까지 여러 사람 희생되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지진이 났다, 비행기가 추락했다,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하며 사람 목숨을 숫자로 표시하는 뉴스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누구누구가 자살했다더라 하는 소식을 듣는 침울함도 다른 때보다 유별나다. 이런 와중에서도 4대강의 바닥은 헤집어지고 있고,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나기 하루 전에 이른바 ‘별건수사’로 야당 지도자를 옭죄는 검찰의 무리수에 일부 여당 인사들조차 반발하는 ‘웃기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4월이 너무 춥다.

그러고 보니 역사적으로도 유난히 4월에 의로운 피를 흘린 이들이 많다. 히틀러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하여 싸우다가 처형된 독일의 본회퍼 목사는 1945년 4월 9일 아침에 강제수용소에서 한줌의 재가 되었다. 이분은 자신이 히틀러와 싸우는 것을 두고 평소에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는 독일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며 사람을 치어 죽이고 있는데, 나는 목사랍시고 치어 죽은 사람들의 장례나 치러 주어야 하는가?”

1865년 4월 15일에는, “내가 남의 노예 되기를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나도 남을 지배하는 자리에 서기를 거부해야 한다”며 노예 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노예들이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꽤 오랫동안 차별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인권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4월 8일에 희생되었다.
“노예 해방 선언은 흑인을 통해 가까이까지는 인도했으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갈라진 홍해를 통과하는 것은 보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판단이었다.

골골마다 여울여울 피어나는 진달래처럼, 대한민국의 산하가 젊은 피로 붉게 물들여졌던 반세기 전의 4·19도 4월의 일이었다. 약자로서 약자를 위한 운동에 힘썼던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때도 4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준다. 본회퍼 목사 같은 분들이 있었기에 히틀러 정권이 무너졌고, 링컨 같은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노예해방이 실현되었고, 마르틴 루터 킹 목사 같은 분들이 있었던 까닭에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가 인권 이야기를 입에 담을 수 있지 않은가.

잔인한 달, 또 부활의 달
그리고 예수의 죽음으로 판이 다 깨진 줄 알고 낙심하며 흩어졌던 제자들은 ‘부활’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방법으로 다시 나타난 스승 예수를 만나지 않았던가.

아무리 추워도, 비록 늦더라도 봄은 오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죄 없는 죽음은 결코 허망한 끝이 아니라는 것이 하늘의 섭리임을 주문처럼 외며 다시 희망을 노래할 일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기도 하지만 부활의 달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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